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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시즌1

[웹소설] 균열(龜裂) 1화 — 육교 위에서 | 무료 연재 현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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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균열 1화 육교 위에서 - 초능력 현대판타지

균열 (龜裂)

1화 — 육교 위에서

· · ·

이준혁의 하루는 냄새로 시작됐다.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

사흘째 빨지 못한 교복 냄새.

어젯밤 마시다 만 컵라면의 식은 국물 냄새.

눈을 뜨기도 전에, 코가 먼저 아침을 알렸다.

준혁은 천장을 봤다.

반평짜리 옥탑방의 천장은 한쪽이 곰팡이로 거뭇했다. 비가 오면 그 자리에서 물이 샜고, 준혁은 이제 그 위치를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진 날엔 손전등 없이도 양동이를 제 위치에 놓을 수 있었다.

3년을 살면, 그 정도는 몸이 기억했다.

핸드폰을 봤다. 새벽 5시 20분.

알람은 5시 30분에 맞춰뒀는데, 또 알람보다 먼저 깼다.

요즘 늘 그랬다. 잠이 부족할수록 몸이 더 일찍 깼다. 잠드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걸, 몸이 먼저 아는 것처럼.

준혁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옥탑방엔 그가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모든 것이 있었다.

다림질해서 옷걸이에 건 교복. 모서리가 닳은 책가방. 다리 하나가 짧아 신문지를 접어 괴어둔 책상. 그 위에 쌓인 문제집 몇 권. 표지가 다 해진 중고 문제집이었다. 새 책을 살 돈은 없었지만, 준혁에게는 책의 상태가 중요하지 않았다. 안에 든 내용은 새 책이든 헌 책이든 똑같았으니까.

그리고 책상 한쪽에, 구겨진 봉투 하나.

준혁은 그 봉투를 집어 열었다.

만 원짜리 세 장, 천 원짜리 일곱 장.

봉투 안에 돈을 넣어두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지갑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봉투는 두께로 한 달을 보여줬다. 두툼하면 버틸 만한 달이고, 얇으면 졸라매야 하는 달이었다.

지금 봉투는, 거의 비어 있었다.

준혁은 벽의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월세 납부일이었다.

봉투 안의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준혁은 봉투를 도로 책상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당황은 선택지가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였다. 준혁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선택지가 없으면 당황도 없었다.

그냥, 다음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집주인 할머니는 며칠은 봐주는 편이었다. 편의점 알바 주급이 모레 들어온다. 그걸 다 끌어모아도 모자랐지만, 모자란 만큼은 또 어디선가 메워야 했다.

어떻게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준혁은 계산을 거기서 멈췄다. 답이 없는 계산을 오래 붙들면 마음만 닳았다. 그것도 3년 전, 혼자가 된 그 겨울에 배운 거였다.

그는 일어나 작은 냄비에 물을 올렸다. 라면 하나를 꺼냈다. 면을 반만 부러뜨려 넣고, 나머지 반은 다시 봉지에 넣어 묶었다. 저녁에 먹을 몫이었다. 라면 하나로 두 끼를 나누는 건, 이제 계산이라기보다 그냥 손에 익은 동작이었다.

국물까지 비운 뒤, 준혁은 교복을 입었다.

셔츠 깃이 살짝 누레졌지만, 다림질을 해서 각이 살아 있었다.

가난한 건 어쩔 수 없어도, 추레한 건 선택이라고 준혁은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다림질을 했다. 단돈 몇 푼짜리 전기요금이 들었지만, 그 정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그가 자신에게 지키는, 마지막 선이었다.

가방을 멨다. 문을 나섰다.

옥탑 계단을 내려오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열일곱 살의 아침이었다.

· · ·

낙산고등학교는 학교라기보다 정류장 같았다.

서울 변두리, 재개발이 멈춰 선 동네 한가운데 있는 그 학교를 학생들은 '낙산'이 아니라 '낙오산'이라고 불렀다.

성적도 진학률도 바닥이었다. 선생들조차 이 학교에 발령받으면 의욕을 내려놓는다는 말이 있었다. 다들 잠깐 머물다 떠나는 곳. 정류장.

준혁은 그 학교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존재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준혁은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지웠다.

눈에 띄면 피곤한 일이 생긴다. 피곤한 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준혁에게 시간과 에너지는 곧 돈이었다.

그래서 그는 교실 뒤쪽 구석에 앉아, 말을 아끼고 표정을 아꼈다.

그 원칙이 시험대에 오른 건,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를 지나는데, 앞쪽에서 박성재가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의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박성재는 이 학교의 일진이었다. 덩치가 크고, 주먹이 빨랐고, 늘 두세 명을 몰고 다녔다.

1학년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었다.

준혁은 그 장면을 봤다.

그리고 시선을 거뒀다.

발걸음의 속도도,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벽 쪽에 붙어서 그 옆을 지나갔다.

박성재가 준혁을 흘끗 봤다.

"뭐 봐?"

"안 봤어."

준혁은 짧게 답하고, 그대로 걸었다. 시비가 붙을 만한 어떤 빌미도 주지 않는, 정확하게 계산된 무표정이었다.

박성재는 잠깐 준혁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다시 1학년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준혁은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자기가 끼어들면, 그 1학년 아이 대신 자기가 표적이 된다. 그러면 매일 시달릴 거고, 알바를 빠지게 될 거고, 월세가 밀릴 거고, 결국 옥탑방에서 쫓겨날 거였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정의감조차 사치였다.

준혁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안다고 해서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 · ·

점심시간, 옆자리에서 도시락 뚜껑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준혁, 또 급식 신청 안 했지."

오지민이었다.

준혁의 옆자리에 앉는, 유일하게 준혁에게 말을 거는 아이.

지민은 도시락을 싸 왔다. 하얀 쌀밥 위에 노란 계란말이가 가지런히 올라간 도시락. 누군가 아침에 정성껏 만들었다는 게 한눈에 보이는 도시락이었다.

"배 안 고파."

준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거 거짓말이잖아."

지민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뚝 잘랐다. 절반을. 그러고는 준혁의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놨다.

"먹어. 우리 엄마 계란말이 진짜 잘해."

준혁은 그것을 밀어내려고 했다.

손이 움직이다가, 멈췄다.

아침에 라면 반 개. 위장이 비어 있다는 감각이, 계란말이를 보는 순간 선명해졌다.

준혁은 손을 거뒀다.

"...고맙다."

"천만에. 대신 너 수학 시험 때 나 좀 도와줘."

"수학만?"

"어차피 다른 과목은 포기했어."

준혁은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누군가의 아침이 담긴 온기였다.

그는 짧게 웃었다.

그게 이 학교에서 그가 짓는, 거의 유일한 미소였다.

지민은 그 미소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자기 도시락에서 소시지 하나를 더 집어 준혁의 책상에 올려놨다.

준혁은 그것도 받았다.

지민에게는 받는 게, 거절하는 것보다 미안한 일이 아니라는 걸. 준혁은 그 한 가지를 배우는 데 1년이 걸렸다.

· · ·

방과 후, 준혁은 뛰었다.

편의점 알바가 오후 5시였다. 학교에서 편의점까지 버스로 두 정거장.

하지만 준혁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

1,500원이면 삼각김밥 한 개에 우유를 살 수 있었다. 뛰는 게 합리적이었다.

준혁은 합리적인 걸 좋아했다. 정확히는, 합리적인 것 말고는 기댈 게 없었다.

골목을 꺾었다. 시장을 가로질렀다.

좌판 사이를 빠져나가며 생선 비린내와 튀김 냄새와 과일 단내가 차례로 스쳤다.

"학생, 천천히 가!"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늘 하던 인사를 던졌다. 준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이 길을 3년째 뛰었다. 어디서 속도를 줄이고 어디서 사람을 피해야 하는지, 발이 다 외우고 있었다.

육교 계단이 나왔다.

준혁은 계단을 두 칸씩 밟아 올랐다.

육교 위에 올라서자, 아래로 교차로가 펼쳐졌다.

4차선 도로가 십자로 만나는 곳. 신호등, 횡단보도, 오가는 차들.

늦은 오후의 햇빛이 도로 위에서 비스듬히 부서지고 있었다.

준혁은 육교를 가로지르며 무심코 아래를 봤다.

그리고—

봤다.

트럭이었다.

도로 왼쪽에서 달려오는 대형 트럭. 적재함에 무언가를 가득 실은, 속도가 붙은 트럭.

준혁의 눈이 신호등을 확인했다. 교차로의 차량 신호는 빨간불이었다.

그런데 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노란불을 넘기려다 빨간불에 걸린 운전자의 흔한 선택. 멈추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가속.

준혁의 시선이 횡단보도로 옮겨갔다.

한 아이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보며 걷는 아이.

보행 신호가 초록불이었으니, 그 아이는 자기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는 트럭을 보지 못했다.

트럭도 아이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준혁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굴러갔다.

트럭의 속도. 시속 50, 어쩌면 60. 아이의 위치. 횡단보도 한가운데. 트럭이 아이에게 닿기까지 남은 거리. 그리고 그 거리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눈 한 번 깜빡일 시간.

준혁은 그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운전자가 지금 브레이크를 밟아도 늦었다. 누가 소리를 질러도 늦었다. 아이가 지금 뛰어도 늦었다.

그 짧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이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준혁은 평생을 그 이성에 기대 살아왔다. 감정이 아니라 계산. 충동이 아니라 손익. 그것이 가난한 열일곱이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준혁의 몸이, 이성을 기다리지 않았다.

· · ·

육교 난간을 넘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였다. 준혁의 손이 난간을 짚었고, 다리가 그 위로 넘어갔고, 그는 이미 허공에 있었다.

육교 높이는 4미터쯤이었다.

떨어지는 동안, 시간이 이상하게 늘어졌다.

준혁은 자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래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트럭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발이 땅에 닿았다.

충격이 무릎을 타고 올라왔지만, 준혁은 비틀거리지 않았다. 착지하자마자 몸을 던졌다. 아이를 향해.

두 손으로 아이의 작은 등을 밀었다. 있는 힘껏, 횡단보도 바깥쪽으로.

아이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보도블록 위로 굴렀다.

무릎이 까지겠지만, 살 거였다.

아이는 살 거였다.

준혁은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트럭의 전면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은색 범퍼. 그 위로 흙먼지. 운전석에서 입을 벌린 채 굳어버린 운전자의 얼굴.

피할 시간은 없었다.

준혁은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 이렇게 되는구나.

이상하게 차분한 생각이었다.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먼저 든 생각이 따로 있었다.

그래도, 그 애는 살았으니까.

트럭이 준혁의 오른쪽 몸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오른손이, 오른발이, 오른쪽 어깨가, 그리고 얼굴 왼쪽이—

쾅.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충격이 먼저 왔다.

세상이 한 번 크게 출렁였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바꿨다.

준혁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도로 위로 떨어졌다.

아스팔트가 등을 때렸다. 입안에서 쇠 맛이 났다.

비명이 들렸다. 달려오는 발소리. 급정거하는 타이어 소리. 멀리서 울리는 경적.

준혁은 도로에 누운 채, 하늘을 봤다.

늦은 오후의 하늘이 거기 있었다. 비스듬한 햇빛. 천천히 흐르는 구름.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픈데—

아픈 느낌이 한곳에 모이지 않았다.

온몸이 뜨거웠다. 특히 오른쪽이.

트럭에 부딪힌 오른손이, 오른발이, 그리고 충격이 스친 왼쪽 눈이.

그 세 군데가, 아프다기보다는—

뜨거웠다.

무언가가 끓는 것처럼.

준혁은 그 감각을 마지막으로 기억했다.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좁아졌다. 하늘이 점점 멀어졌다. 소리들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흐려졌다.

눈을 감기 직전, 준혁은 한 가지를 생각했다.

그 애 이름도 모르는데.

그리고 세상이 하얗게 꺼졌다.

· · ·

준혁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사흘 뒤였다.

병실 천장은 옥탑방 천장과 달랐다.

곰팡이가 없었다. 깨끗하게 하얬다.

준혁은 한참 그 흰색을 봤다.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낯선 흰색이었다.

몸을 조금 움직여봤다. 오른쪽 곳곳이 붕대로 감겨 있었다. 왼쪽 눈 위에도 붕대가 있었다. 링거 줄이 팔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트럭에 정면으로 부딪혔는데, 통증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부러진 곳이 있을 텐데, 몸이 묘하게 가벼웠다. 마치 누가 통증의 음량을 절반쯤 줄여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붕대 안쪽이, 아직도 뜨거웠다.

사흘이 지났는데도 그 뜨거움이 가시지 않았다.

오른손이, 오른발이, 왼쪽 눈이.

사고의 순간 끓어오르던 그 감각이, 식기는커녕 안쪽에서 천천히 무언가를 빚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 세 군데가, 준혁이 모르는 사이에 다른 무엇으로 바뀌고 있는 것처럼.

준혁은 그게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병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곧 밤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 되어서야, 그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눈을 감으면—

내일이 보인다는 것을.

· · ·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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