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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시즌1

[웹소설] 균열(龜裂) 11화 — 두 정거장 | 무료 연재 현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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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龜裂)

11화 — 달리는 다리

· · ·

발신자의 답장은, 사흘 동안 오지 않았다.

준혁은 그 사흘을 평소처럼 살았다. 새벽 알바, 학교, 새벽풀이 답글. 핸드폰을 너무 자주 확인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책상에서 떨어진 자리에 엎어 두었다.

두 번째 날 저녁, 준혁은 한 가지 변화를 알아챘다.

그 커뮤니티에, 새 풀이가 올라와 있었다.

준혁이 올린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풀이. 그런데 그 어조가, 묘하게 익숙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답에 도달하는 단계를 압축하지 않고 모두 보여주되, 학생이 어디서 막힐지를 정확히 짚어주는 방식. 풀이 끝에 "이 부분은 그냥 외우지 마세요"라는 식의 짧은 코멘트가 붙어 있는 것까지—

준혁이 자기 풀이에 쓰는 방식과, 너무 비슷했다.

닉네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청량튜터.' 청량리 쪽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저 우연한 이름일 수도 있었다.

준혁은 그 풀이를 한 줄 한 줄 다시 읽었다.

그리고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 사람이, 발신자가 말한 두 명 중 한 명일 가능성. 또는—발신자 본인일 가능성.

발신자가 자기 익명 계정으로는 풀이를 더 이상 안 올리고, 다른 계정으로 활동하는 거라면. 어쩌면 준혁을 시험해보려고 같은 커뮤니티 안에 다른 얼굴로 들어와 있는 거라면.

준혁은 두 경우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봤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청량튜터의 풀이를 더 들여다보면, 발신자 또는 발신자가 말한 누군가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

· · ·

준혁은 그날 밤 늦게까지, 청량튜터의 풀이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다.

일주일에 두세 개 정도. 항상 밤 열 시에서 자정 사이에 올라왔다. 풀이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처음엔 평이한 수능 기출이었지만, 최근 것은 의학·생물 쪽 학술 문제까지 풀고 있었다.

한 가지 풀이에서, 준혁은 멈췄다.

병리학 논문에서 가져온 듯한 문제. 그 풀이에서, 청량튜터는 본인이 아는 임상 사례를 짧게 덧붙여 설명하고 있었다. "이 경우 실제로 OO 병원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한 줄.

병원 이름은 가려놨지만, 그 글의 어조는—의학 쪽 실무에 익숙한 사람의 글이었다.

준혁은 다른 풀이들도 차례로 다시 봤다. 비슷한 흔적이 또 있었다.

화학 평형 문제에서는 "이 반응은 실제 약물 대사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는 설명. 통계 문제에서는 "임상 데이터에서는 표본의 편향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코멘트. 본인의 실무를 자기도 모르게 글에 스미게 하는 사람이었다. 글 쓰는 사람의 직업은, 늘 그가 고른 비유 안에 흘러나왔다.

준혁의 머릿속에, 발신자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한 명은 아마 의사 같아요.

준혁은 모니터에서 잠깐 시선을 떼고, 천장을 봤다.

발신자가 말한 두 명 중 한 명이, 청량튜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발신자도, 청량튜터도, 이 커뮤니티 안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였다. 같은 종류의 풀이를 알아보는 눈은, 같은 종류의 사람만 가졌으니까.

준혁은 한 가지를 결심했다.

청량튜터에게, 쪽지를 보내보기로.

다만 발신자에게 했던 것처럼 직접 떠보지는 않을 거였다. 그저 평범한 튜터 동료의 질문 한 줄. 풀이의 한 부분에 대해 묻는,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질문.

그 질문에 청량튜터가 어떤 어조로 답하느냐가—준혁이 알고 싶은 정보였다.

· · ·

다음 날 아침, 준혁은 학교에 가는 길에 짧게 멈춰 섰다.

왼쪽 눈이 찌릿했다.

능력이 부르지 않아도 먼저 오는, 그 익숙한 신호. 사고 이후 몇 번 있었던 종류였다.

준혁은 잠깐 길가에 멈춰, 자연스럽게 가방을 고쳐 메는 척했다. 그리고 눈을 짧게 감았다.

장면이 들어왔다.

늦은 오후의 거리였다. 큰길에서 좀 떨어진 골목. 가로등이 막 켜지기 시작하는 시간. 그리고 한 사람이, 그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봉투 같은 것. 그 이상은 등 너머로 잡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등이 보였다. 어깨가 살짝 좁고, 키는 보통. 30대쯤의 어른이었다.

그 사람이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합류하는 자리—거기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

준혁의 눈은 그 표지판의 글자를 잡아냈다.

'청량중학교 앞.'

준혁은 눈을 떴다.

학교 가는 길의 햇빛이, 다시 얼굴에 들었다.

청량중학교 앞. 준혁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였다. 그의 일상 반경에서 완전히 벗어난, 도보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

그리고 '청량'이라는 두 글자는—어제 새벽까지 그가 정리하던 청량튜터의 닉네임에 있던 그 두 글자였다.

· · ·

준혁은 그날 학교를 평소처럼 다녔다.

겉으로는 차분했다. 다만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셈이 굴러갔다.

왼쪽 눈이 보여주는 미래는, 길어야 한 달 안쪽이었다. 그러니 그 늦은 오후의 거리 장면은—이미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며칠 안. 어쩌면 일주일 안.

그 장면 자체는, 보기에 따라 평범했다. 어른 한 명이 봉투를 들고 골목을 빠져나와 정류장으로 향하는 것. 그게 다였다.

그런데 능력이 그 장면을 굳이 보여줬다는 건,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준혁의 눈은, 지금까지 무의미한 장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늘 그가 알아야 할 무언가가 그 장면 안에 들어 있었다.

이번엔 무엇일까.

그 어른의 얼굴? 봉투의 내용물? 골목 자체? 아니면 그 장면의 시간—가로등이 막 켜지는 그 어스름한 순간 자체?

모를 일이었다. 미래는, 보고 나서야 의미가 풀리는 종류의 정보였다.

다만 준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그 장면이 일어날 자리에, 자기가 먼저 가 있는 것.

· · ·

종례 후, 준혁은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새벽 근무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많지는 않았다.

예지가 보여준 장면은 '가로등이 막 켜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이 종례 직후 다섯 시 무렵이니까, 그 어스름까지는 한 시간 반쯤. 평범한 사람이라면 청량중학교 앞까지 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고, 자리를 잡고 골목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을 빼면 거의 빠듯한 일정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준혁은 가방을 고쳐 메고, 학교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큰길을 피해 골목 쪽으로 빠졌다.

그가 가본 적 없는 동네였다. 지도 앱에 청량중학교를 찍으면 도보 한 시간이 떴다. 버스로 두 번 갈아타고는 사십 분. 그런데 준혁의 머릿속에는 다른 셈이 굴러갔다.

산 정상을 사 분에 오르는 다리.

편의점 새벽 알바를 마치고 학교까지, 평소 그가 가볍게 달리던 길의 속도. 평범한 사람의 두 배. 어쩌면 세 배. 그가 진지하게 속도를 내본 적은 사고 이후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알바와 학교 사이를 채우기 위한 빠른 걸음이 다였다.

오늘은 달랐다.

준혁은 골목으로 빠진 뒤, 인적이 드문 구간을 골라 속도를 올렸다. 골목 끝에서 가로등 사이로, 큰길 옆 인도의 빈 구간으로, 누군가가 본다면 '저 학생 왜 저렇게 뛰지' 정도의 의문만 남길 수 있는 속도. 그러면서도 숨은 거의 가빠지지 않았다.

풍경이 빠르게 뒤로 흘렀다.

준혁이 다니던 동네의 떡볶이집 간판이 지나갔다. 그 다음 동네의 작은 공원이 지나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골목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게 이름들이 차례로 옆을 스쳤다. 그가 사는 도시 안에 이렇게 많은 동네가 있었는지를, 준혁은 처음으로 실감했다.

두 달 동안 그의 세계는 옥탑방·학교·편의점이 만드는 작은 삼각형이었다. 그 삼각형 밖에는 같은 도시가 있었지만, 준혁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가난한 사람의 세계는 늘 좁았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그리고 그 좁음을 의식할 여유조차 없어서.

그 세계가, 오늘 능력의 다리에 실려 한 번에 넓어지고 있었다.

왼쪽 눈이 보여준 장면 하나를 따라, 그가 학교 반경 밖으로 한 발 나오고 있었다. 두 달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준혁의 능력은 늘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막는 데만 쓰였다. 박성재의 주먹, 골목의 다섯 명, 도로의 트럭. 전부 그가 있는 자리로 온 위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준혁이 능력을 따라, 자기 발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방어가 아니라, 접근. 그 차이가 의미가 있었다.

준혁은 그 감각의 무게를 가볍게 가늠해봤다. 무겁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다만, 처음 가는 길을 가는 사람의 약간의 긴장. 그 정도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왼쪽 눈이 보여준 그 가로등 켜질 시간이—그의 발걸음에 따라 제시간에 닿을 수도, 엇갈릴 수도 있다는 팽팽한 감각.

준혁의 속도는, 점점 더 올라갔다.

· · ·

청량중학교 앞에 도착했을 때, 준혁의 손목시계는 오후 5시 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시간 거리를, 18분에 끊었다.

그는 정류장에서 좀 떨어진 자리에 서서, 짧게 호흡을 골랐다. 숨은 거의 가빠지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움직인 사람의 약한 열기만 손끝에 남아 있었다. 옆에서 보면 '버스에서 막 내린 학생' 정도로 보일 거였다.

그는 동네를 천천히 둘러봤다.

청량중학교 앞은, 준혁이 다니는 동네와 비슷한 결이면서도 결정적으로 달랐다. 작은 상가들, 떡볶이집, 문방구. 그것까지는 같았다. 다만 골목이 더 좁고, 빌라가 더 빽빽했다. 길 끝의 작은 분식집에서 떡볶이 냄새가 흘러나왔고, 학원을 마치고 나온 중학생들 몇이 큰 소리로 떠들며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본 적 없는 동네라는 사실이, 익숙한 풍경 안에서 묘하게 도드라졌다. 그 이질적인 거리감이—오늘 그가 자신의 좁은 세계에서 한 발 걸어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줬다.

준혁은 정류장 근처에 도착해, 자기가 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어른 한 명이 골목을 빠져나와 정류장으로 합류하는 자리.'

그 골목은—정류장의 어느 방향에서 이어져 있을까.

준혁은 정류장 표지판 앞에 서서, 천천히 360도 둘러봤다. 정류장은 사거리 한 모서리에 있었다. 골목은 두 방향에서 큰길로 합류했다. 하나는 빌라촌 쪽, 다른 하나는 떡볶이집 뒤편의 좁은 길.

준혁은 두 골목 입구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빌라촌 쪽 골목에서, 시선이 잠깐 멈췄다.

그 입구 옆에 작은 간판이 있었다.

'청량의원.' 1층에 있는 작은 동네 의원이었다.

준혁의 머릿속에서, 어제 정리한 청량튜터의 풀이 한 줄이 떠올랐다.

이 경우 실제로 OO 병원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의학 쪽 실무에 익숙한 사람의 어조. 의사일 가능성.

준혁은 청량의원의 간판을 한참 봤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 너무 멀어진다는 걸, 그는 알았다. 청량튜터의 '청량'이 청량리 일대를 가리키는 건지 다른 의미인지도 모르고, 청량튜터가 정말 의사인지도 추정일 뿐이고, 미래의 장면 속 그 어른이 청량튜터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너무 많은 우연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준혁은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늦은 오후.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았지만, 곧 켜질 시간이었다.

그가 본 미래의 그 시간이, 오늘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며칠 안의 어느 날일 거였다.

그래도 그는, 한 시간만 더 앉아 있어 보기로 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기다리는 일이었다.

· · ·

가로등이 켜질 무렵, 핸드폰이 진동했다.

준혁은 화면을 봤다.

커뮤니티 쪽지 알림. 익명 발신자였다.

사흘 만이었다.

준혁은 쪽지를 열었다.

답이 늦었어요. 학생의 두 질문이, 제 안에서 정리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요.

첫 번째 질문—두 명을 어떻게 알아봤는지. 그건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워요. 같은 종류의 풀이는, 같은 종류의 사람만 알아보거든요. 학생도 곧 알게 될 거예요.

두 번째 질문—왜 학생이었는지. 그건 솔직하게 말할게요. 학생의 풀이가, 이 커뮤니티 안에서 한 가지 점이 달랐어요. 다른 누구도, 자기 능력을 그렇게까지 절제해서 풀이에 담지 않거든요. 학생의 풀이는—본인이 가진 걸 다 보여주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는 풀이였어요.

그게 학생의 정체를 알려주는 신호였어요.

참고로—그 신호를 알아본 건 저뿐만이 아니에요.

준혁의 손이, 핸드폰 위에서 굳었다.

그 신호를 알아본 건 저뿐만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인지 다시 묻기도 전에—

준혁의 시야 한쪽으로, 빌라촌 골목에서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큰길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손에 작고 두꺼운 종이봉투를 든 어른.

어깨가 살짝 좁고, 키는 보통의 30대.

준혁이 며칠 안에 일어날 거라고 봤던 그 장면이—

오늘이었다.

그리고 그 어른이 정류장 쪽으로 걸어오면서, 처음으로 얼굴이 보였다.

준혁은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두 달 전, 병원 침대에서.

그를 깨운 의사였다.

· · ·

1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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