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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시즌1

[웹소설] 균열(龜裂) 8화 — 옆자리 | 무료 연재 현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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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龜裂)

8화 — 옆자리

· · ·

다음 날 아침, 준혁은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아직 1교시 종이 울리려면 한참 남아 있었다. 복도는 거의 비어 있었고, 햇빛이 창을 통해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준혁은 2반 교실 앞을 지나갔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박지우는 자기 자리에 있었다. 창가에서 두 번째 줄. 책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가방은 의자 옆에 곱게 세워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책도 필통도 없었다.

그 빈 책상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준혁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복도 끝의 정수기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천천히 돌아오면서—2반 앞에서, 잠깐 멈췄다.

박지우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준혁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말 한 번 걸기"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박지우와 단 한 번도 대화한 적 없는 자기가, 무슨 핑계로 옆에 가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자연스러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괜한 말로 다가가면, 박지우는 오히려 마음을 닫을 수도 있었다.

준혁은 어제 선생님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그냥 한마디면 돼. 무리하게 무슨 얘기 끌어내려고 하지 말고.

한마디.

거창한 위로도, 따져 묻는 것도 아닌, 그저 한마디.

준혁은 일단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학교 매점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준혁이 매점에서 산 것은, 두유 두 팩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건네기에 부담이 없는 것. 음료수보다는 조용하고, 빵보다는 가벼운 것. 받는 사람이 거절하기에도, 받기에도 부담이 적은 것.

준혁은 한 팩을 자기 가방에 넣고, 다른 한 팩을 손에 든 채 2반 교실로 향했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 박지우의 책상 옆에 잠깐 멈춰 섰다.

박지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이, 가까이서 보니 더 작았다. 안경 너머의 눈은 옅게 충혈돼 있었지만, 표정은 잔잔했다. 너무 잔잔해서, 오히려 무엇이 그 안에 담겨 있는지 짐작이 안 되는 종류의 잔잔함이었다.

"어… 안녕."

준혁은 자기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게 어색했다. 그는 평소 학교에서 누구에게도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

박지우는 잠깐 준혁을 봤다.

"…안녕."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준혁은 두유 팩을 박지우의 책상 위에 살짝 내려놨다.

"이거. 매점에서 산 건데 하나 남아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미리 그렇게 살 생각으로 산 거였다. 박지우는 두유를 잠깐 봤다.

"…나 줘도 되는 거야?"

"응. 안 마시면 그냥 둬도 되고."

준혁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붙잡지 않았다. 더 묻지 않았다. 옆에 앉지도 않았다. 그저 한 팩을 두고 나왔다.

그게 준혁이 정한 방식이었다.

약한 사람을 압박하지 않는다. 한 번에 다 얻으려 하지 않는다. 준혁은 자기가 약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가장 무서운 건, 누군가가 다가와 "괜찮아?"라고 묻는 일이었다. 그 질문은 늘, 더 많은 설명을 요구했으니까.

그래서 준혁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자리에 두유 한 팩을 놓아두고 가는 사람으로—오늘은 그 정도면 됐다.

· · ·

점심시간, 준혁은 평소처럼 자기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지민은 옆자리에서, 평소처럼 계란말이를 잘라 준혁의 책상에 올려놨다.

준혁은 그 계란말이를 잠깐 봤다.

3년 동안,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익숙한 동작. 어제 능력이 보여준 장면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박지우의 등 뒤로 다가가던 지민의 얼굴. 준혁이 모르고 있던 지민의 한 부분.

준혁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지민아."

"응?"

"너… 박지우 알아?"

지민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주 짧은 멈춤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짧은. 그런데 사고 이후 준혁의 눈은, 그 짧은 멈춤을 놓치지 않았다.

지민은 천천히 젓가락을 다시 움직이며, 평소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지. 같은 학년이잖아."

"이름만? 아니면 더?"

지민이 준혁을 봤다.

"갑자기 왜?"

"그냥. 오늘 아침에 한번 봐서."

준혁은 사실을 다 말하지 않았다. 능력 얘기는 꺼낼 수 없었고, 선생님이 부탁한 일이라는 것도 아직 꺼내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박지우의 사정을 함부로 다른 사람의 입에 올리는 건, 어른의 책임이지 학생의 일이 아니라고 선생님이 말한 게 떠올랐다.

지민은 한참 동안 자기 도시락을 봤다.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 박지우랑 친했어. 중학교 때."

준혁의 손이, 도시락 위에서 멈췄다.

"중학교 때?"

"응. 우리 학원이 같았어. 거의 매일 같이 다녔어. 학원에서, 집까지."

"근데 왜… 학교에서 한 번도 같이 있는 거 못 봤어."

지민이 잠깐 침묵했다.

준혁은 다그치지 않았다. 박지우에게 했던 것처럼, 지민에게도 같은 방식이었다. 묻기는 하되, 더 깊이 캐내려 하지 않는다.

지민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좀… 멀어졌어. 누구 잘못이라고 하기 어려운, 그런 멀어짐 있잖아. 같은 학원도 안 다니게 됐고, 반도 달라졌고. 한 명이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시작하면, 다른 한 명은 자연스럽게 옆에서 떨어져 나오는 거. 그게 그렇게 됐어."

"그게 다야?"

"…다는 아니야. 다는 아닌데."

지민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마지막에 한 번, 좀 안 좋게 헤어졌어. 내가 모르는 척한 적이 있어. 지우가 도움 필요할 때. 큰 일은 아니었는데, 내가 그때 그냥 못 본 척했어. 그 뒤로는 서로 어색해서, 학교에서도 인사 안 해."

준혁은 그 말을 가만히 들었다.

지민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다만 눈의 끝이,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왜 갑자기 묻는 거야, 박지우 얘기?"

지민이 다시 한번 물었다.

준혁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정한 만큼만 말했다.

"요즘 좀… 안 좋아 보여서."

지민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안 좋다는 게."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보였어. 너라면, 좀 다를까 싶어서 물어봤어. 중학교 때 친했다고 하니까."

지민은 한참 동안, 도시락 뚜껑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작게 말했다.

"…내가 너무 늦게 듣는 거 아닐까."

준혁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늦었다고도, 안 늦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누구에게 늦고 안 늦고는, 그 두 사람만 아는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 두유 한 팩 줬어. 박지우한테. 그냥 두고 왔어."

"…너는 왜 그랬어?"

"잘 모르겠어. 그냥 한번 가봤어. 너도, 한번 가보면 어때."

지민은 자기 도시락을 한참 들여다봤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나누지 않았다.

다만 지민이 가방을 챙겨 일어서면서, 작게 한 마디만 했다.

"…고마워. 말해줘서."

준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종례 후, 준혁은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학교 정문에서 좀 떨어진 자리에, 그는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정문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자리였다.

딱히 무언가를 계획한 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광경을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광경은, 곧 나왔다.

박지우가 정문을 나왔다.

혼자였다. 가방을 곱게 메고, 평소처럼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그런데 정문을 나서고 몇 걸음 가지 않아—

박지우의 옆으로, 다른 그림자가 다가왔다.

오지민이었다.

지민은 박지우 옆에 가서, 말없이 보폭을 맞췄다. 무슨 말을 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옆에서 함께 걸을 뿐이었다.

박지우는 처음 몇 걸음 동안, 지민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지민은 그제야 한 마디 했다.

준혁의 자리에서는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됐다. 그건 두 사람의 말이지, 준혁이 들어야 할 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박지우의 어깨가, 첫 걸음을 뗄 때보다 조금 풀려 있었다. 그 변화는 아주 작았다. 누가 옆에서 보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하지만 준혁의 눈에는—그 작음이, 분명히 보였다.

준혁은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의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옥탑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준혁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오늘 박지우 옆에 다가간 건, 결국 준혁이 아니라 지민이었다.

준혁이 한 일은 두 가지였다. 두유 한 팩을 책상 위에 두고 온 것. 점심시간에 지민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 것.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두 가지가 모여서—세 사람을, 어제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세워놓았다.

박지우의 무게가 한 번에 덜어지지는 않을 거였다. 그건 어른들의 일이었고, 시간이 들 일이었다. 다만 오늘, 그 무게 옆에 한 사람이 더 서 있게 됐다는 것—그거 하나가 어제와 오늘의 차이였다.

준혁은 오늘 능력을 거의 쓰지 않았다.

왼쪽 눈도, 강한 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두유 한 팩과 짧은 대화 한 번. 능력이 가장 강하게 쓰이는 자리는, 사실 능력 없이도 닿을 수 있는 자리일지도 몰랐다.

준혁은 그 사실을, 오늘 처음 어렴풋이 느꼈다.

· · ·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와, 준혁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으려는데, 화면이 깜박였다.

커뮤니티 쪽지 알림이었다. 새벽풀이 계정으로 들어온 쪽지.

준혁은 익숙한 손길로 알림을 눌렀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왔다. 과외 문의, 풀이 요청, 가끔 칭찬 댓글.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쪽지는, 처음 보는 종류였다.

발신자 이름이 비어 있었다. 닉네임도, 아이디도 표시되지 않은 익명 계정.

본문은, 단 두 줄이었다.

풀이 잘 봤어요. 그런데 학생, 그 풀이 방식—두 달 전에는 못 했을 텐데요.

혹시 그 사고와 관련 있나요?

준혁의 손이, 핸드폰 위에서 멈췄다.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그 사고.' 이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 몇몇. 의사. 사고 아이의 부모. 지민. 그게 전부였다. 새벽풀이의 정체를 알 만한 사람도, 사고를 알 만한 사람도—양쪽에 다 걸쳐 있는 사람은, 준혁의 머릿속에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두 가지를 이미 연결해 보고 있었다.

준혁은 쪽지를 다시 읽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두 달 전에는 못 했을 텐데요.' 이건 단순한 칭찬도, 호기심에 던지는 질문도 아니었다. 준혁의 풀이 수준이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달라졌다는 걸—누군가 추적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이, 사고와 일치한다는 걸 짚어내고 있었다.

준혁은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오늘 종일 그가 신경 쓰던 것들—박지우, 지민, 두유 한 팩—이 한순간에 뒤로 밀려났다.

능력은 알려지는 순간 표적이 된다.

3년 전, 가난 속에서 익힌 그 원칙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그 원칙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었다.

누구일까.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답이 없는 질문들이, 옥탑방의 조용한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준혁은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답장 칸의 커서가, 조용히 깜박이고 있었다.

· · ·

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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