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열 (龜裂)
10화 — 같은 자리
· · ·
준혁의 질문에, 발신자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당신, 누구예요"라는 한 줄을 보낸 뒤, 준혁은 새벽 근무를 마쳤다. 핸드폰 화면은 그 사이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다. 답장 알림은 오지 않았다.
준혁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했다.
발신자도 지금, 어떻게 답할지 망설이고 있는 거였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준혁에게 정보였다. 망설이는 사람은—함부로 거짓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발신자는 준혁에게 자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진지하게 고르고 있었다.
준혁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옥탑방으로 돌아와 한두 시간 눈을 붙였다.
그리고 평소처럼 학교로 향했다.
· · ·
그날 학교는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작은 변화가 있었다.
점심시간, 준혁이 매점에서 두유를 사 들고 자기 교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2반 앞을 지나는데—이번엔, 박지우가 먼저 그를 봤다.
박지우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책을 펼쳐 놓고 있었다. 어제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창밖을 보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 작은 변화가, 준혁의 눈에 보였다.
박지우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준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박지우는 작게 고개를 까딱했다.
인사였다.
준혁은 그 인사에 답해줬다. 같은 정도의 작은 끄덕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게 두 사람의 두 번째 교환이었다. 어제는 두유 한 팩과 짧은 인사, 오늘은 시선이 마주친 1초의 끄덕임. 작은 동전 하나씩 쌓이듯이, 그렇게 연결이 늘어나고 있었다.
준혁은 자기 교실로 돌아가는 동안, 한 가지를 다시 생각했다.
박지우는 오늘도 학교에 왔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사를 했다.
그건 아직 박지우가 무겁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래도—어제와 오늘 사이에, 작은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준혁은 그 차이를, 마음에 한 줄 적어두었다.
그리고 그 한 줄 옆에, 또 하나를 적었다.
지민도, 어제 두 사람이 정문 앞에서 만난 뒤로—오늘 아침에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 어제의 일을 다시 꺼내지도 않았고, 그 일로 준혁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게 지민의 방식이었다. 한 발 들어가는 자리만큼만 들어가고, 그 이상은 묻지 않는.
준혁은 자기가 운이 좋다는 걸 알았다.
옆자리에 지민 같은 친구를 둔다는 건, 가난한 열일곱에게는 사치였다. 그가 가진 거의 유일한 사치. 능력보다 먼저 받았던, 더 오래된 사치였다.
그 사실을 잠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준혁의 호흡이 한 박자 가벼워졌다.
지금 그가 마주하고 있는 건 무거운 일이었다. 익명 발신자, 패턴, 자기 같은 사람들의 존재. 그 무게 옆에—두유 한 팩, 작은 끄덕임, 평소 같은 계란말이 절반이 있다는 사실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았다.
준혁은 그 두 무게를 동시에 짊어진 채, 교실로 들어갔다.
· · ·
오후 종례 시간이 끝나갈 무렵, 핸드폰이 한 번 진동했다.
준혁은 책상 아래에서 화면을 슬쩍 봤다.
커뮤니티 쪽지 알림이었다. 익명 발신자.
드디어 답이 온 거였다.
준혁은 화면을 다시 가렸다. 종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5분이 길게 느껴졌다.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지민이 옆자리에서 "야, 같이 가자" 했다. 준혁은 "먼저 가, 도서관 잠깐 들렀다 갈게" 하고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그는 사람이 빠진 빈 교실에 잠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쪽지를 열었다.
· · ·
이름을 먼저 말할 수는 없어요. 학생이 새벽풀이로 활동하는 것처럼, 저도 익명으로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요. 다만 이건 말할 수 있어요.
저는 학생이 아니에요. 대학생이고, 학생보다 몇 살 위예요.
사고는 작년 봄에 있었어요. 자세히는 말 못 해요. 다만 그 뒤로, 저는 어떤 일들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학생이 풀이를 8분에 푸는 것처럼—저도 비슷한 종류의 일이에요.
저는 학생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학생을 보고 좀 안심했어요. 저 말고도 한 명 더 있다는 걸 알게 돼서요.
지난 1년 동안, 저는 제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준혁은 그 쪽지를, 천천히 두 번 읽었다.
편집되지 않은 어조였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조를 너무 매끄럽게 다듬는다는 걸, 준혁은 어머니가 떠난 뒤 친척들이 그를 두고 하던 말들을 들으며 익혔다.
이 쪽지는, 그런 매끄러움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믿을 수도 없었다.
준혁이 가장 신경 쓰인 건 두 가지였다.
하나, '자세히는 말 못 해요'라는 부분. 이건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발신자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차마 거짓말은 못 하지만, 모든 걸 다 드러내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것.
둘, '학생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라는 부분. 이건 다른 의미로 신경 쓰였다. 이 말을 굳이 쓴다는 건—발신자 자신도 그 가능성을 한 번은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또는, 자기 말고 누군가가 준혁을 해치려 할 가능성을 알고 있거나.
준혁은 핸드폰을 잠깐 책상 위에 엎어놓고, 빈 교실의 천장을 봤다.
형광등 하나가 살짝 깜박이고 있었다.
· · ·
준혁은 답장 칸을 열었다.
이번엔 더 길게 망설였다. 첫 줄을 쳤다가 지웠다. 다시 쳤다가 다시 지웠다.
그가 결정해야 할 게 있었다.
발신자가 풀어준 정보의 양만큼, 자기도 풀어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인정하지 않은 채로 한 발 더 떠봐야 할까.
준혁은 첫 번째를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발신자가 자기를 어느 정도 노출한 것에 비해, 준혁이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건—두 사람의 관계를 불공평하게 만든다. 그러면 다음 쪽지에서, 발신자는 더 이상 솔직해지지 않을 거였다.
준혁은 신중하게, 한 줄을 쳤다.
저도 사고가 있었어요. 두 달쯤 전에요. 다친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왔어요. 그 이상은 아직 말 못 합니다.
그는 그 한 줄을 보내고, 잠시 후 한 줄을 더 쳤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우리 둘 말고 또 있을 가능성을 본 적 있나요?
준혁은 두 번째 쪽지의 전송 버튼을 누르고, 한 박자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건 핵심 질문이었다.
발신자가 1년을 혼자 살았다면, 1년 동안 무언가를 알아봤을 거였다. 같은 종류의 사고, 같은 종류의 변화를 가진 사람을 찾으려고. 그게 자기 능력의 정체를 알아내는 가장 빠른 길이었으니까.
발신자가 그 추적의 결과를 알고 있다면—준혁이 알아야 할 것의 절반은, 발신자에게 이미 있었다.
· · ·
답은, 그날 밤 옥탑방에서 받았다.
준혁이 책상 앞에 앉아 핸드폰을 켰을 때, 쪽지함에 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그리고 답은—본 적 있어요.
지난 1년 동안, 제가 비슷한 풀이를 가진 사람을 찾으려고 커뮤니티 여러 곳을 돌았어요. 수학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도요. 그 과정에서—단정할 순 없지만, 의심되는 흔적을 두 군데에서 봤어요.
한 명은 작년 여름 무렵부터, 다른 한 명은 올해 초부터. 그 두 명은 학생이 아니에요. 둘 다 어른이고, 한 명은 아마 의사 같아요. 다른 한 명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적어도 네 명이에요.
준혁은 그 문장에서 멈췄다.
네 명.
그 숫자가, 옥탑방의 좁은 공기를 한 번 흔들었다.
준혁은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두 달 전까지 그는 한 명이었다. 어젯밤까지 두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네 명이었다.
이 셈에는 무게가 있었다. 발신자가 1년을 들여 두 명을 더 찾았다는 건—찾으려는 사람이 진지하게 시간을 쓰면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발신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누구라도, 충분한 시간과 동기가 있다면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수가 늘어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안심이었다. 자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 자기 한 사람만의 미친 환각이 아니라는 증거니까. 1년 전 봄, 작년 여름, 올해 초, 두 달 전. 이 네 시점 사이에 어떤 공통의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우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일정한 간격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의미였다.
네 명이라면, 누군가는 이미 알아봤을 거였다.
이 도시 어딘가에는—갑자기 다른 머리를 갖게 된 사람들, 갑자기 다른 손을 갖게 된 사람들의 존재를, 데이터로 인지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한 명이라면 우연이지만, 네 명이면 패턴이었다.
패턴은, 관찰된다.
그리고 패턴을 관찰하는 자는, 보통 그 패턴을 이용할 방법까지 함께 찾는다. 준혁은 가난을 통해, 인간이 무언가에서 패턴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분류한다. 표적화한다. 그 다음을 결정한다.
그러니 네 명이라는 숫자는, 안심과 경계를 동시에 의미했다.
준혁은 자기 오른손을 들어 봤다.
여전히 평범해 보이는 손이었다. 그 안에 든 힘은, 겉으로는 한 톨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안전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패턴이 관찰되고 있다면—언젠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까지 누군가 찾아낼 거였다.
그게 학교에서 박성재 같은 인간일 수도, 학원의 옆자리 친구일 수도, 아니면 더 큰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준혁은 오른손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답장 칸의 커서를 봤다.
그가 발신자에게 다음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 머릿속에서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
두 가지였다.
하나—발신자는 그 두 명을 어떻게 알아봤는가. 알아본 방법이 있다면,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도 준혁을 알아볼 수 있다.
둘—발신자는 왜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준혁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가. 왜 작년 여름의 그 사람이나, 올해 초의 그 사람이 아니라—준혁이었는가.
두 번째 질문이, 첫 번째보다 더 신경 쓰였다.
그건 발신자에게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두 사람이 아닌 준혁을 고른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이든, 발신자는 다른 두 사람과 준혁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봤다는 것이었다.
능력의 종류일까. 사고의 양상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준혁에게는 정보였다. 발신자가 어떤 잣대로 사람을 분류하고 있는지를 알면—같은 잣대를 가진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 준혁을 분류할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준혁은 다시 자기가 살아온 방식으로 돌아왔다. 받은 정보를 다시 정보로 바꾸고, 그 정보로 다음을 계산하는 방식.
능력은 들떠서 쓰는 게 아니라, 차분히 계산해서 쓰는 거였다.
지금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은—사실 사고가 가져다준 세 가지가 아니라, 사고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 머리였다.
준혁은 답장을 치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옥탑방의 좁은 도시가 늦은 밤의 불빛을 깜박이고 있었다.
· · ·
1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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